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츠코 비 (문단 편집) == [[미치코 상황후|쇼다 미치코]]를 반대하다 == 세츠코 비의 친정어머니 노부코는 황실의 사돈이자 [[가쿠슈인]] 동창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, 황족들과 [[화족]]들의 우두머리로 군림했다. 1947년의 [[신적강하]]로 [[다이쇼 덴노]]의 직계 자손들을 제외한 모든 방계 황족들과 화족들은 평민으로 강등되었지만, 그들의 콧대는 여전히 높았다. 1957년, [[아키히토]] 황태자는 평민 [[미치코 상황후|쇼다 미치코]]와 연애를 시작했다. 그리고 1958년, 둘은 곧 결혼할 계획임을 발표한다. 미치코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이었고, 쇼다 가문은 당시 일본 재계 20위 안에 들던 재벌가였다. 그러나 황실의 오랜 전통을 깬 '평민'과의 '연애결혼' 계획에, 옛 황족들과 화족들은 분노했다. 노부코는 반대운동을 주도했고, 노부코의 언니 이츠코[* [[이방자]]여사의 어머니이다.]는 아예 일기에다 "이제 일본도 다 끝났구나!!"라고 썼을 정도였다. 그 외에도 세츠코 비의 형님이자 [[아키히토]] 황태자의 어머니인 [[나가코 황후]], 세츠코 비의 아랫동서 [[키쿠코 비]], [[야나기하라 뱌쿠렌]][* [[다이쇼 덴노]]의 친어머니인 [[야나기하라 나루코]]의 조카. 웃긴 것은, 뱌쿠렌도 미천한 신분의 [[첩]]을 어머니로 둔 [[서녀]]였다는 사실이다.]까지 반대운동에 나섰다. 하지만 아키히토 황태자의 아버지 [[히로히토]] 덴노가 "이제 황실에도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."면서 결혼을 허락하여, 반대운동은 실패로 돌아간다. 1959년 4월, 미치코는 무사히 시집와서 황태자비가 되었다. 이후 세츠코 비는 다른 황족들과 화족들과 함께, [[미치코 상황후|미치코 황태자비]]에게 [[미치코 상황후/갖가지 시집살이 에피소드|가혹한 시집살이]]를 가했다.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츠코 비와 [[키쿠코 비]]는 차츰 감정이 누그러져서, 이후에는 미치코 황태자비와 친해졌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